태그 : 드라마

[경향닷컴][세상속으로]'조국 후보'가 옳다.

“여러분은 반성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원하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당신의 선택이 잘못됐던 겁니다. 여러분은지금 직장을 잃어도, 집을 잃어도, 그 흔한 문화시설 하나 없어도 다 내 팔자인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그런 팔자를 원하셨던겁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주(가상의 도시 이름)가 바뀌어야 당신의 삶이 바뀌고, 당신의 삶이 바뀌어야 당신 아이들의 삶이바뀝니다.”

픽션은 때로 논픽션보다 사실적이다. <시티홀>이란 드라마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조국’(차승원)의 연설이그랬다. 정치부 기자 시절 적잖은 유명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었지만, 폐부를 찌르는 연설은 많지 않았다. 말은 아름답고현란했으나, 그 순간뿐이었다.

조국은 달랐다. 물론 누군가 다그칠 것이다. 드라마는 판타지라고. 인정한다. 진짜 선거에서 차승원처럼 멋진 후보를 본 적은없으니. 다만 한 가지는 짚어야겠다.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대통령선거든 기자로서 경험한 각종 선거에서 이토록 용감하게 말한후보는 없었다. 후보들은 늘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 바빴다. 당신들이 옳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종입니다, 주인님이 원하시면뉴타운 지정이든 특수목적고 유치든 다 해드리지요, 딸랑딸랑…. 선거가 끝나면 종은 거만한 상전으로 변했다. 정치학자나사회학자들은 뒤늦게 유권자들을 꾸짖었다. 그럼 뭐하나, 버스는 이미 떠났는데…. 조국은 정공법을 택했다. 당신의 반성을요구했다. 잘못된 선택, 허위의식으로 찍은 한 표가 당신의 팔자를 만든 거라고 못박았다

유권자 꾸짖은 드라마속 유세

2004년 총선이 끝난 뒤 계급투표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거센 ‘탄핵 역풍’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서초구, 경기성남시 분당구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강력히 지지했다. 자신의 경제·사회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표를 주는, 전형적인계급투표였다.

지난해 7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도 다르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이어진 촛불집회의 여운이 남아 있을 무렵이다. 은평·강북·중랑구의투표율은 서울 전체 평균(15.5%)보다 낮았던 반면 강남·서초·송파구의 투표율은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강남 엄마’들은특목고·자사고 확대 등 엘리트 교육을 앞세운 공정택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나는 공 교육감의 정책 기조에 동의하지 않지만,스스로의 이익을 지키는 쪽에 표를 던진 강남 유권자들의 선택은 존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지난달 29일 밤.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20년 넘게 가까이 지낸 사이지만, 정치를화제로 삼은 적은 거의 없다. 체질적으로 어디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친구는 정치나 이념에 냉담했다.

그날은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뜨겁고 간절했다. “정치하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투표도 안 하고 살았다. 그런데오늘은 온종일 경복궁과 서울광장 주변을 떠나지 못하겠더라. 이제는 뭔가 하고 싶다. 투표도 할 거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든,구의원을 뽑는 선거든.”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어떤 인물로 기억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노 전대통령을 비주류의 정치인이라고들 표현하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주류는 수적 다수로 봐도 서민들이고 지방 사람들이다.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진정한 주류 아니냐. 그럼에도 소수의 특권적 사람들이 주류 행세를 하면서 진짜 주류행세를 할 사람들이 소외되고 배제되어 왔다. 진정한 주류한테 주류 몫을 돌려주려고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싶다.”(6월1일한겨레 인터뷰).

‘잘못된 선택’ 이제라도 반성을

진정한 주류라 해도 일단 빼앗긴 몫을 되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속에서 우러나는 진짜 욕망에 충실할 때, 남이 만들어놓은 가짜 욕망의 프레임에 끌려가지 않을 때에야 가능하다.

국화 한 송이 든 채 분향을 기다리던 시간은 서서히 과거로 변해가지만, 떠난 이를 기억하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개개인 앞에놓인 정치적 선택을 회피하지 말 것, 솔직하게 선택하고 나와 닮은 선택을 한 이들과 광범위하게 연대할 것. 살아남은 자들의예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민아|국제부 부장대우>

by 바람여행 | 2009/06/17 08:48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